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시위의 이해 == 각국의 기성 언론들은 대부분 사실을 외면했으며 정부는 알 자지라나 [[CNN]], [[BBC]], [[NYT]]와 같은 해외 언론의 취재를 저지하였다. 이집트에서 알 자지라의 등록을 취소하고 수 명의 스탭을 강제 억류했던 것이 그 예. 기자에게 대놓고 사격을 하기도 했고, 이집트의 경우에는 저격수에게 사망한 기자가 나오기도 하였다. [[바레인]]의 경우 [[http://video.nytimes.com/video/2011/02/18/world/middleeast/100000000651169/tc-021811-slackmanattack.html?ref=middleeast|헬기가 기자를 향해 사격하기도 하였다]]. 대신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서 현재의 상황과 관련 사진 및 영상이 전해졌다. 시위의 [[뇌관]]이 되는 영상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전해졌고 [[페이스북]] 그룹이나 트위터를 통해 시위의 일정이 전파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이 그렇듯이 시위가 격화되면 정부는 [[SNS]]의 접속을 차단하며 아예 인터넷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 우회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강구되었다. [[구글]]에서는 이집트의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개발자]]들이 모여서 Speak2Tweet 서비스를 만들어서 정해진 전화번호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 #egypt의 꼬리표를 달고 트위터로 글에 올라가는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구글은 이집트 외에도 리비아와 같은 인터넷이 차단된 국가로 Speak2Tweet 서비스를 확대하였다. 대규모 시위는 [[금요일]]에 많이 열렸다. 이슬람 신자는 금요일에 반드시 [[예배]]를 봐야 하며 이로 인해 금요일은 사실상의 [[휴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5대 의무 중 하나인 صلاة(Salah)의 일부분인 جمعة(Jumu'ah)이며 [[꾸란]]에 규정되어있기에 정부가 모스크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는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아랍권의 시위는 금요일 모스크에 모인 사람들이 시위대로 자연히 바뀌는 패턴을 보여왔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역시 금요 예배 직후에 있었던 시위에 탱크와 헬기를 동원한 발포로 수천 명이 사망한 '검은 금요일' 사건이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금요예배를 주관하는 성직자들의 성향에 따라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집트의 경우는 성직자들이 반 무바라크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위가 더 격화되기도 했지만, [[2009년]] 이란의 경우 금요 예배를 [[하메네이]]가 직접 주관하면서 반정부 시위대를 비난하여 동력을 꺾기도 하였다. 2011년 8월에 이슬람권이 [[라마단]] 기간에 들어서면서 민주화 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나라는 시위가 잦아들었으나 이를 뛰어넘은 나라들은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튀니지, 이집트를 제외하면 완전한 민주화 운동이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랍권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